플라스틱 재활용 9% 불과 미세플라스틱 돼 인체로 돌아온다
플라스틱 재활용 9% 불과 미세플라스틱 돼 인체로 돌아온다
“김치를 사서 가위로 뜯었는데 가위에 무언가가 붙어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분해돼서 가루가 되다시피 한 봉투였습니다.
플라스틱 재질의 봉투가 산성인 김치에 닿은 채로 삭은 것이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오래 쓴 가습기에 파우더 같은 미세플라스틱이 가라앉은 걸 본 적도 있습니다.
가습기가 작동할 때 생기는 미세한 진동에 플라스틱이 마모돼 생긴 겁니다.
사람이 10년간 이런 식으로 자신도 모르게 미세플라스틱에 노출된다면, 문제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경희대 의과대학 생화학·분자생물학교실 박은정 교수의 말이다. 그는 ‘김치 봉투 사건’을 계기로 미세플라스틱의 신체 독성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고,
미세플라스틱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폐에 석면에 노출된 폐와 비슷한 이상 조직이 생긴 것을 관찰했다.
김치봉투 성분인 폴리에틸렌의 장기 섭취가 부모세대의 면역계를 넘어 자녀세대의 호르몬 분비까지 악영향을 미치는 것도 확인했다.
박은정 교수는 미세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 토론회에 토론자로 나섰다. 지금이야말로 미세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할 ‘골든타임’이란 생각에서다.
이는 박은정 교수 혼자만의 의견이 아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정지현 책임연구원은
“현재 한국 연안의 미세플라스틱 오염도는 높지 않지만, 2100년에는 연안의 80%에서 미세플라스틱 오염도가 무영향예측농도를 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생물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의 농도가 되기 전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단 것이다.
미세플라스틱 특별법 제정을 위한 국회토론회가 지난 15일 국회박물관 강당에서 성료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과 소비자기후행동이 주관한 이번 토론회엔 학계·법조계·정책실무·산업계·환경단체 인사들이
여럿 모여 미세플라스틱 저감의 필요성을 재확인했다. 한국분석과학연구소 정재학 연구소장과 조제희 변호사의 발표로 시작된
토론회는 토론자들의 발언과 시민-토론자 간 질의응답 시간으로 이어졌다. 토론자로는 ▲경희대 의과대학 생화학·분자생물학교실 박은정 교수
▲마이크로필터 개발 1팀 이경수 실장 ▲세계자연기금(WWF) 한국본부 플라스틱 담당 전수원 과장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정지현 책임연구원 ▲환경부 김지영 환경보건정책과장 등이 자리했다.
토론회를 관통하는 내용은 다음의 세 가지였다. 첫째, 생산된 플라스틱 제품과 제품에서 발생하는 미세플라스틱을 회수해야 한다.
둘째, 이를 위해선 시민과 산업계의 참여가 필요하다. 셋째, 국제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정부가 미세플라스틱 줄이기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
토론회 좌장으로 참여한 소비자기후행동 이차경 사무총장은 “사이언스어드밴스드 조사에 따르면, 플라스틱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1950년부터 2015년까지 총 83억 톤 가량의 플라스틱이 생산됐지만, 그중 재활용된 것은 약 9%(세계 평균)에 불과하다”며
“나머지는 그대로 환경에 노출돼 물과 자외선에 마모돼 미세플라스틱이 된다”고 말했다. 자연에 광범위하게 퍼진 미세플라스틱을 수거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배출 전 회수’가 강조되는 이유다.
수명이 다한 플라스틱 제품이 환경에 노출되기 전에 제품 생산 기업이 거둬들이고,
세탁기 등 미세플라스틱을 발생시키는 전자제품에 ‘미세플라스틱 저감 필터’를 설치하는 게 한 방법이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기업과 소비자가 환경 책임을 분담해야 이를 실현할 수 있다. 이에 ‘미세플라스틱 특별법’
초안은 치약·스크럽제 속 마이크로비즈 같은 ‘1차 미세플라스틱’ 배출량이 기준치 이상인 제품을 제조·수입·판매·사용하는 것을 금지한다.
외부 환경에 노출된 플라스틱이 부서져 생기는 ‘2차 미세플라스틱’이 기준치 이상 발생·배출되지 않도록 조치할 의무 역시 기업에 부여했다.
비자에겐 ‘플라스틱 보증금’이 부과된다. 플라스틱 폐기물이나 미세플라스틱 배출량이 많은 업종에 해당하는 사업자는 제품이나 서비스
자체 가격과 별도로 미세플라스틱 보증금을 제품 가격에 포함해야 한다. 단, 플라스틱 제품을 반환한 소비자는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이차경 사무총장은 “소비자기후행동이 세탁기 제조업체 18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미세플라스틱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덴 40% 이상이 동의했다”
며 “다만, 기업 입장에선 기술적인 고민이 있을 수 있으므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계속 소통하겠다”고 말했다.